말의 뒤를 이어 흰 염소 뮤리얼과 당나귀 벤저민이 들어왔다. 벤저민은 이 농장에서 가장 나이가 많았고 성질도 가장 고약했다. 그는 좀처럼 말을 하지 않았지만 어쩌다 입을 열면 대개 비비꼬는 말만 내뱉곤 했다. 예를 들면, 하느님은 파리를 쫓으라고 꼬리를 달아주셨지만 자기는 꼬리가 필요 없으니까 꼬리 대신 파리를 없애주셨으면 고맙겠다는 식이었다. 농장의 동물 가운데 이제까지 한 번도 웃지 않은 것은 그뿐이었다.
왜 그러냐고 물으면 그는 입버릇처럼 "웃을 일이 없어서."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어도 그는 복서에게만은 마음을 주었다. 일요일이면 이 둘은 곧잘 과수원 앞에 있는 작은 목장에서 나란히 풀을 뜯어먹으며 말없이 함께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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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 벤저민 영감은 혁명 후에도 전혀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았다. 초과 근무를 피하지도 않았지만 스스로 맡겠다고 나서는 일도 없이 존스 시대와 똑같은 그 느리고 완고한 태도로 일을 했다. 혁명과 그 결과에 대해서 그는 일체 비평 비슷한 말을 하지 않았다. 존스가 없어져서 이전보다 행복해졌냐고 물으면 그는 오직 "당나귀란 오래 사는거다."라고만 대답했다. 그래서 모두들 이 수수께끼 같은 대답을 수긍하는 도리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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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도대체 어찌된 일인지 동물들은 아무도 몰랐다. 오직 벤저민 영감만은 달라서 마음에 짚이는 것이 있다는 듯 콧등을 씩룩거렸으나 아무 말도 하려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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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였다. 벤저민이 목이 터지라고 절규하면서 농장 저택 쪽에서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것을 보고 모두들 놀랐다. 벤저민이 흥분한 모습을 본 것도 처음이었다.
"빨리 와요, 빨리 와!"
그는 소리를 질렀다.
"빨리와요! 복서가 끌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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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안뜰에 가로 간판을 써 붙인 커다란 상자형 이두마차가 서 있고 마부석에는 모자를 쓴 날카롭게 보이는 남자가 앉아 있었다. 복서의 마구간은 텅 비어 있었다.
동물들은 그 마차 둘레에 모여들었다. 그리고, "안녕, 복서! 안녕!"하고 일제히 인사했다.
"바보들! 이 바보들아!"
벤저민은 그들의 주위를 이리저리 뛰며 작은 굽을 구르면서 소리를 높였다.
"이 눈뜬장님들아! 저 마차 옆에 뭐라고 써 있는 지 못 읽었어?"
그 말을 듣고 동물들은 조용해졌다. 뮤리엘이 한 자씩 떠듬떠듬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벤저민은 그녀를 옆으로 밀치고 조용해진 가운데 소리를 내어 읽기 시작했다.
"앨프레드 시몬스 폐마 도살 및 아교 제조업, 월링턴 시 피혁 및 골부 판매, 개집 판매. 저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 복서는 말 도살자에게 끌려가는 거란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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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벤저민 영감만은 콧등 근처가 다소 회색이 되었을 뿐 거의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리고 복서가 죽은 후로는 더 무뚝뚝해져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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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저민은 누군가가 자신의 어깨에 코를 비벼대고 있음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았다. 클로버였다. 나이 먹은 그녀의 눈은 전보다 더 심하게 흐려져 있었다. 그녀는 가만히 그의 갈기를 끌고 뒤로 돌아서 '7계명'이 씌어져 있는 창고의 끝까지 그를 데리고 갔다. 둘은 타르를 칠한 벽에 하얗게 적혀 있는 글씨를 바라보면서 잠시 동안 말 없이 서 있었다.
"나는 눈이 어두워지기 시작했어요. 젊었을 때도 저기 써 있는 것은 읽지 못했지만 내게는 어쩐지 그 벽이 달라진 것처럼 보여요. 벤저민, '7계명'이 이제까지와 같은 가요?"
벤저민은 이번에 처음으로 자신의 규율을 깨뜨리기로 했고, 그래서 벽에 써 있는 글자를 그녀에게 읽어주었다. 벽에는 단 하나의 계명이 있을 뿐, 그 밖에는 아무 것도 써 있지 않았다. 그 한가지 계명은 다음과 같았다.
- 조지 오웰, 동물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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