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ERO0201 2012. 5. 23. 08:43

전우치의 마지막 대사 “이것이 바다(물음조)”


여기서 생기는 의문. 그런데 관객이 보고 있는 것은 바다인가? 아닌가? 그러니깐 인공적인 CG로 만들어진 바다인가 실제 장소에서 촬영한 바다인가. 다시,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당연히 바다인데 왜 전우치(강동원)는 이것을 스스로에게 자문과 동시에 관객에게 되물어 보는가? 진짜 바다인가 가짜 바다인가? 진짜인가 가짜인가.


최동훈의 3번째 장편 영화 전우치는 고전 소설 전우치의 캐릭터를 따온 영화다. 중요한 것은 이 허구의 고전 소설의 전우치를 어떻게 2009년 현대에 접목시켜는가. 허구를 실제의 시대에 접목시켜야 하는. 가짜가 진짜와 어떻게 조화롭게(혹은 부조화스럽게) 어울리는가.


영화 시작 한국영화에서 보기 드물게 3d그래픽 판타지로 시작하는 영화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시작한다. 나만의 감상인지는 모르겠으나 오만방자한 카메라와 연출에서 영화안에 흥분이나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마치 김지운의 놈놈놈처럼(다른 의미로). 그 이유의 답을 나로서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 채로 시작하기 때문이라고 밖에 찾을 수 없다.

 

우리는 고전소설의 전우치를 모르고, 설사 안다고 해도 그의 능력과 한계가 어느 정도로 설정되어 있는지 알지 못한다. 단순히 관객이 즐겨야 하는 지점이 요괴와 전우치의 대결구도거나 그 대결구도 안에서의 전우치의 능력으로만 생각한다면. 자잘한 숏들과 정신없이 빠른 카메라, 전작 ‘범죄의 재구성’ ‘타짜’에서 보다 휠씬 빨라 보이고 많아 보이는 숏들. 점점 더 빨라지고 있는 한국영화.


영화의 초반 우리는 이미 바다를 본다. 이것은 전우치의 도술로인데 갈대밭을 바다로 바꾸는 기적을 행한다. 그리고 마지막 우리는 다시 바다를 본다. 마지막 바다는 전우치 일행이 사진을 통해 직접 바다에 가서 본다. 관객이 이미 본 어떤 기시감. 혹은 데자뷔. 이 두 바다에서 오는 차이점. 이미 본 바다를 다시 봐야하는 어떤 역설. 영화 안에서 시간의 단절에서 생기는 반복되는 이미 알고 있음에도 오는 흥미로움 오묘함. 영화 전우치의 전체적인 틀이자 미학.


이 반복의 물음들. 왜 하필 영화 안의 영화인가? 왜 일제 시대 세트 안에서 싸워야 하는가? 그들이 건물을 중력에 상관없이 이리저리 위로 옆으로 넘나들때 우리는 그것이 세트임을 이미 안다. 설사 와이어를 달고 실제로 이리저리 넘나들었다고 해도 그냥 평평한 세트를 카메라의 위치를 바꾸었거나 그대로 찍었음을 알고있다. 왜 청계천인가? 어떤이처럼 이명박은 요괴라고 봐야하는가? 나는 이 영화에서 이명박을 떠올리지 않았다. 청계천은 복원인가 복제인가? 복원의 의미가 청계천에 있는가? 청계천은 이전의 상징적 의미가 아닌 새로운 의미로 만들어진 건축이 아닌가? 전우치가 처음 요괴와 싸울 때의 세트, 당신은 여기서 이명세의 ‘형사’를 떠올리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임수정이 요괴가 된 후 당신은 박찬욱의 ‘박쥐’를 떠올리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김윤석, 유해진, 백윤식을 보고 당신은 최동훈의 전작의 캐릭터를 떠올리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당신이 보고 있는 것은 강동원 이라는 전우치인가 전우치라는 강동원인가?

 

전우치의 마지막 대사에 대한 답(이것은 바다), 이미 이전의 전우치의 대사 속 에서


‘그대의 눈 속에 바다가 있구나’


전우치가 사부보다 더 멀리 보았음을 혹은 전우치 마지막 대사의 답은 이미 영화 속 이전에 있음을. 바다는 관객의 눈 속에만 있음을. 이제 관객을 알 것이다. 우리가 보는 것은 바다인가 아닌가? 가상인가 실재인가. 전우치가 TV 속 으로 들어갈 때, 초랭이(유해진)이 미술작품(진품인가 모조품인가)을 밟을 때, 마지막 ‘사진’ 속으로 전우치 일행이 갔음을. 복제와 원본이 간격이 무너질 때, 복제의 복제. 이것이 시뮬라크르의 놀이일 때. 관객은 알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창조된 거짓임을. 완벽한 구라임을. 감독 최동훈과 관객도 알고 있고 암묵적으로 동의. 최동훈의 이전 작품에서의 구라가 점점 더 판이 커짐을(사기-도박-도술). 이것이 영화임을. 영화 속의 영화임을. 허구 속에 허구임을


다시, 정장 차림에 바다로 간 전우치와 임수정. 바다와 어울리지 않는, 마치 영화 촬영 세트에서 빠져 나와 다시 세트로 들어온 것 같은 기이함.

 

마지막 강동원의 대사, 이것은 바다. 믿을 것인가 말 것인가.
최동훈도 알고 있고 관객도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