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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우, 흑기사
ZERO0201
2012. 5. 25. 15:59
"뭐, 좋아요. 선생님도 좋고, 친구들도 좋고, 수업 내용도 좋고 다 좋아요."
"그거 별로 좋지 않다는 뜻이구나?"
주엘이 눈가를 찌푸리며 물었다. 릭은 눈을 크게 떴다.
"네?"
"다 좋다는 말은 제일 무성의하게 하는 말이야. 남들 듣기나 좋으라고 대충 하는 소리지."
- 김근우, 흑기사
「아직 찾지 못했니?」
「…….」
릭은 고개를 돌려 라니안을 보았다. 라니안의 푸른 눈동자가 깊은 호수가 되어 일렁이고 있었다.
「네가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을 말이다.」
「…….」
「너는 어려서부터 그랬지. 마치 쫓기듯이 무언가에 열중하고 얼마 안 가서는 그것을 잊어버렸어. 대개의 아이들이 자라면서 꿈을 여러 번 바꾸기 마련이지만 너는 좀 특별했어. 너의 소망은 피상적이지 않았다. 무언가 목표를 정하면 그것에 열심히 매달렸지. 다만 그러다 곧 그만두는 게 문제였지만.」
「…….」
「나는 그런 너를 보며 한 번도 걱정해 본 적이 없다. 원래 네 나이 때는 누구나 어느 정도는 그러기 마련이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 네게는 열정이 있기 때문이었다. 다양한 꿈을 향해 몸을 던지고 자기를 시험해 보는 네 그 치열한 열정은 네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이다. 아직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지? 학교도 그래서 들어간 것이겠지? 걱정마라. 언젠가 네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갖게 되면 그때 너는 누구보다도 찬란하게 타오를 것이다. 네게는 열정이 있으니까 말이다.」
(중략)
문득 릭의 가슴 한구석이 타 들어갔다. 그것은 라니안에 대한 걱정 때문이 아니라 그 자신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 나도 저렇게 흔들리지 않는 어깨를 가질 수 있을까. 한평생의 세월 동안 쌓아온 모든 것을 다만 작고 왜소한 어깨 위에 싣고 말없이 꿋꿋하게 걸어갈 수 있을까.>
<아까 아저씨는 내가 열정을 가졌다고 하셨다. 치열한 열정이라고 하셨다. 그것만 간직하면 찬란하게 타오를 수 있다고 하셨다.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중략)
라니안은 조용히 몸을 돌렸다. 그리고 천천히 멀어져 갔다. 릭은 가만히 서서 라니안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점이 되어 사라질 때까지 릭은 눈을 돌리지 않았다. 더 이상 라니안이 보이지 않게 되자 그제야 릭은 천천히 손을 들어 조금 전 라니안이 쓰다듬은 자기 어깨를 만져보았다. 아직도 라니안의 체온이 남아 있는 듯했다. 릭은 자기 손과 어깨를 보고 그 다음에는 조금 전까지 라니안의 모습이 남아 있던 곳을 보았다. 몸 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조용한 음성 한 가닥이 흘러나왔다.
「저는 치열해 본 적이 없어요…….」
- 김근우, 흑기사
시간이 흐르고 나는 많은 생각을 했어요. 내가 왜 ??이 되었는지, 그리고 나중에는 왜 ??이 된 것을 후회했는지.. 후회? 그래요, 후회에요. 그렇게도 ??이 되고 싶었는데, 막상??이 되고 나자 그 때부터 은근히 후회가 되기 시작한 거예요.
- 김근우, 흑기사
기적은 커녕 종교 자체에 관심이 없었죠.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나도 신을 믿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하지만 전 신이 정말로 존재한다고 믿지는 않아요. 기적도 별로 신뢰하지는 않죠. 저는 그저 신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신이 나를 많이 도와줬으면 좋겠다 싶을 뿐이에요. 진정한 신앙에 대한 욕구를 품고 있는 것이 아니라 불안한 현실을 잊게 해 줄 효과 좋은 마약 같은 것을 바라고 있을 뿐이죠.
- 김근우, 흑기사
내가 단순명쾌하다기 보다는 내 앞에 놓여 있는 일들이 단순 명쾌한 것들뿐인 겁니다.
(중략)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은 신경 끄고 현실적으로 대처가 가능한 부분에 뛰어든 다음 가만히 결과를 기다리면 됩니다. 얼마나 단순명쾌합니까?
- 김근우, 흑기사